SDA개혁운동 세계선교회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로부터 출교당한
무리들에 의하여 조직된 교회로서 계시록 18장 천사의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일곱째 교회인 라오디게아 시대의
한 독특한 백성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1914년 오스트리아 알듀크 페르디난도 황태자가 암살자의 총알에 쓰러졌을 때, 유럽은 화약고와 같이 폭발하였다.
그 다음날 군대들은 행진을 하고 군사력을 집중되는 가운데 죽음의 전쟁에 몰입하게 되었다.

독일 함부르크에 위치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유럽지회는 길이 끊긴 벼랑 위에 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군복무를 양심적으로 거부하는 종교적 확신을 가진 자들은
군대의 강제징집 명령에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였다. 그 당시에는 계명을 지키는 모든 교단들에게
그리스도인에 대한 특별 조치법이 없었다. 전투를 하는 가운데서 안식일을 지킬 수 없고,
살상을 금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 특히 넷째 계명과 여섯째 계명을 지키는 일은 불가능하였다.

1914년에 우리의 젊은 재림청년들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의미하는 나라의 부름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수감을 당하며 사형대 앞에 서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개인의 양심을 허용하는 어떤 특별한 조치도 없었다. 본질적으로 이 사건은 장차 다가올 일요일 강제령의
마지막 위기와 똑같은 투쟁의 축소판이었다. 예언의 신은 하나님의 계명이 쟁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는데,
모든 일이 예언의 말씀을 확증시켜 주었다.

놀라운 것은 정부의 압력이 거세지면서 교회 지도자들이 정부와 같은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면
모든 재림교회의 기관들은 문을 닫아야 했으며 생명의 위협이 가해졌다.
이러한 압력 가운데서 교회 지도자들은 1914년 8월 4일 베를린에 있었던 국방부와 전쟁을 관할하는
총사령관 앞으로 다음과 같은 선언문을 발송하였다. 그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가장 존경하는 사령관님과 국방부 장관님 귀하

정부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일반적인 군복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여러 차례 고려해 보면서
토요일(안식일)에 군복무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광신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각하,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런 특별한 전쟁시기에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다음의 원칙을 따를 것입니다.

성경의 기본 원칙과 기독교의 규율들을 고수하며, 안식일에 모든 일을 금함으로써 하나님께서 태초에 제정하신
안식일(토요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이러한 전쟁 시기에 우리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뭉쳤으며
이러한 특별한 상황에서는 토요일(안식일)에도 무기를 들 것입니다.
우리는 벧전 2:13-17절에 나오는 성경 원칙을 고수할 것입니다.

독일 연합회장: H.F.슈버트 (서명)”

1915년 3월 5일자의 또 다른 선언문의 일부를 소개한다:

“… 유사시인 지금 독일의 재림교회 조직의 지도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군복무에 참여하는 모든 교인들에게,
이러한 긴박한 상황가운데 시민들로써 조국의 요구를 따라 토요일(안식일)에도 다른 전사들이 일요일에
전투를 벌이는 것처럼 열심히 싸우도록 권고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1914년 8월 4일에
존경스러운 프러시안 국방부 장관님을 섬기기 위해 작성된 서류의 사본을 받아주십시오.

유럽지회, 지회장: 콘라디 (서명)

동부독일연합회, 연합회장: H.F 슈벌트 (서명)

색슨지회, 지회장: 폴 드린하우스 (서명)”

이상과 같은 교단적인 배도는 당시 전쟁 당사국인 16개국 모두가 직면한 상황이었다.

1918년 4월 12일자 드레스너 누스테 나크리첸 기사에 한 재림교회 목사의 진술이 실렸다.

“전쟁이 시작할 무렵 우리 교단은 둘로 나뉘어졌다. 우리 교인들의 98퍼센트는 무기를 들고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 저희들의 양심적인 임무라고 생각하고 안식일에도 전투하기로 하였으며
이 연합된 입장을 지도자들은 곧 국방부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2퍼센트는 이 연합된 결정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교회로부터 출교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