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본래 고상한 능력과 공정한 마음이 품부(稟賦)되었다.
그의 본성은 완전하였고 하나님으로 더불어 융화되었다. 그의 사상은 순결하였고 그의 목적은 신성하였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말마암아 그의 능력은 악용되어 사랑의 자리는 이기심으로 점령한 바 되었다.

그의 천성은 범죄로 말마암아 너무 약하여졌으므로 그 자신의 힘으로는 악의 세력을 저항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사람은 사단에게 사로잡힌 자가 되었으니 만약 하나님이 특별히 간섭하시지 아니하셨다면
그는 영원히 그대로 사로잡힌 자가 되었을 것이다.

인류 창조의 하나님의 계획을 실패케 하고 이 세상을 재화(災禍)와 황폐로 충만케 하려는 것이 유혹자 곧 사단의
목적이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재화가 하나님의 인류를 창조하신 사업의 결과로 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사람이 죄없는 상태에 있을 때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골 2:3)있는 자와 더불어 즐거이 교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는 신성한 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하게 되었다.

지금도 중생하지 아니한 자의 마음은 역시 그러하다.
그 마음이 하나님과 융화되지 못하매 따라서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는 가운데서 기쁨을 얻지 못한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없고 거룩한 자들과 같이 사귀기를 꺼릴 것이
비록 그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아무 기쁨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기심 없는 사랑이 지배하는 거기에서, 각자의 마음이 무한하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마음과
서로 통하는 거기에서, 죄인의 심금(心琴)에는 아무런 공명(共鳴)도 없을 것이다.

죄인의 사상과 취미와 동기도 거기 사는 무죄한 자들을 고무(鼓舞)시키는 사랑과 취미와 동기와는
배치(背馳)될 것이다. 그는 하늘의 “멜로디”에는 거친 음조가 될 것이다.

그에게는 천국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장소가 될 것이다.
그는 하늘의 빛이 되시고 하늘의 기쁨의 중심이 되시는 자에게서 피하기를 원할 것이다.

그런즉 악인이 하늘에서 제외(除外)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제적 명령으로가 아니다. 저희 자신이 하늘의 교제에
부적당하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도 그들에게는 오히려 소멸시키는 불이 될 것이다.

저들은 저희를 구속(救贖)하기 위하여 죽으신 자의 얼굴을 피하기 위하여 차라리 멸망을 자취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빠진 죄의 구렁텅이에서 우리 자신이 힘으로 피해 나올 수는 없다. 우리의 마음은 악한데 우리가
그것을 고칠 수 없다.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욥 14:4).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교육과 수양과 의지력(意志力)의 연단과 인간의 노력은 각각 상당한 분한(分限)을 가졌으나
이것들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에는 무력한 것이다.

이것들이 혹 행위의 외모적 단정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고칠 수는 없으며
생애의 동기(動機)를 깨끗케 할 수도 없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나서 성결하여지려면 먼저 마음 속에서 동작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나니 곧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이 능력은 곧 그리스도이시다. 오직 그의 은혜만 이 죽은 심령의 기능에 생기를 주어서
그것을 하나님께로 즉 거룩한 데로 이끌 수 있는 것이다.

구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요 3:3) 즉 사람이 새 마음과 욕망과 새 목적과 새 동기를 받아 그것들로 새 생애에 들어가지 아니할 것 같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요 3:3)다고 하셨다.

본성적으로 사람에게 잠재(潛在)하고 있는 선을 계발시키기만 하면 족하다는 관념은 치명적(致命的) 오해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7).

또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하기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하였다.

하나님이 자애를 깨닫고 그의 품성의 인자하심과 자부적(慈父的) 온정을 깨달아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하나님의 율법의 지혜로움과 공의로움을 깨닫고 그 율법이 사랑의 영원한 원칙 위에 세워진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넉넉지 않다.

사도 바울도 이 모든 것을 깨닫고 부르짖기를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롬 7:16).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첨가하여 심령의 고민과 절망 중에 말하기를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라고 하였다.

그는 스스로 얻을 수 없는 순결과 의로 갈망하여 부르짖기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고 하였다. 이러한 부르짖음은 어느 곳에서나 어느 시대에나
죄의 짐에 눌린 자들의 마음에서 발하는 부르짖음이다.

이런 모든 부르짖음에 대한 대답은 다만 하나 뿐이니
곧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요 1:29) 함이다.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은 곧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죽음보다도 강한 사랑으로써 이 세상의 당신의 자녀들을 극진히 사모하신다.
그는 당신의 아들을 주심으로써 온 하늘을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다.

구세주의 생애와 사망과 중보, 천사들의 봉사, 성신의 탄원, 만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늘 아버지,
하늘 주민들의 끊임없는 흥미, 이 모든 것이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동원(動員)되었다.

아아!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드리신 그 놀라운 희생을 묵상하여 보자! 온 하늘이 잃어버린 자를 도로 찾아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소비하고 있는 노력과 정력의 진가(眞價)를 생각하여 보자.

이보다 더 강한 동기를 가지고 이보다 더 강력한 동력(動力)을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옳은 행위에 대한 과분한 상급, 하늘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천사들과의 교제,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의 교통하며
사랑하는 것, 영원한 시대를 통한 우리의 모든 기능의 향상과 발달, 이 모든 것들이 과연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창조자와 구속주에게 충심으로 사랑의 봉사를 하게 하는 큰 자극과 장려가 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이러한 반면에 죄에 대하여 내리시는 하나님의 형벌, 회피할 수 없는 보응, 우리 품성의 타락,
최후의 멸망들은 사단을 섬기지 말라고 경계하는 경고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기록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무심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이 이상 무엇을 더 하실 수 있었을 것인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써 우리를 사랑하신 자와의 관계를 바로 잡자.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변화되어서 부리심을 받는 천사들과 사귀며 하늘 아버지와 아들과 융화되어
교통할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준비하여 두신 방법을 잘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