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 6:4)

이 말씀을 이용하여 사단은 많은 사람들을 오류로 인도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참으로 영원하시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아들은 아버지와 무엇인가 다르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역사하는
하나의 비존재자라는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와 같은 결론은 당장에는 유한한 인간의 이해력을
만족시켜 주긴 하지만 사단이 던진 미혹의 화살을 맞았던 하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한분의 여호와는 누구이신가? 하는 의문점을 연구해 보자.
히브리어로 ‘하나’를 표시하는 단어로 두 가지 용어가 사용된다. 에하드(ehad)야히드(yahid)이다.

에하드:
한 개 이상의 개체가 연합하여 하나의 단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하나의 복합적인 단위라 할 수 있다.
창 2:24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별개의 개체이지만,
“둘이 하나의 몸”이 되라고 하셨을 때 사용된 ‘하나’라는 단어가 에하드이다.

야히드:
이 단어는 절대 단수 글자 그대로의 하나, 곧 유일한(only)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된 예를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신 6:4의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라는 하나의 단위는 절대 단수인 야히드가 아닌 에하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절대적인 한분의 개체인 의미로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버지, 아들, 성령 세 분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분은 하나(에하드)라고 말하고 있다. 계획과 목적과 뜻이 완전한 연합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하시며
불일치라는 것은 이 분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라고 말하는 것이다.


유혹의 땅에서 속히 떠나라

하와는 에덴동산을 거닐다가 어느 사이에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 나무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한 음성을 듣게 되었고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2-5)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는 말씀과는 모순되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점을 발견했을 때 그는 유혹자의 음성임을 깨닫고 급히 유혹의 땅에서 떠나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감히 유혹자와 함께 담화하였고 결과적으로 미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유혹의 땅에서 속히 떠나라고 권고하고 싶다. 삼위하나님의 개체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분명 말씀과 모순되는 가르침이다. 더 이상 유혹의 장소에서 머뭇거린다면 하와와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필경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계속하여 유혹자와 담화를 계속한다면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유혹자의 말이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도 보이고 그래서 그 말들이 믿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유혹의 열매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주어먹게 한 후에야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다. 더 이상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기별에 관심을 버려야 한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권고한 말씀에 유의하자: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딤전 6: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