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원성과 여호와 하나님이 되심을 부인하려 든다.
마치 예수그리스도는 성부하나님의 혈육의 아들로서만 설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데
그렇게 설명한다면 모든 의문은 해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더 나아가 수많은 의문과
추측을 낳게 하며 무수한 이론들을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을 성경은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런 모든 인간들의 추측들을 일소시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란 말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은 예수님에게 적용하신 말씀들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1:8)

“…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계 1:17)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시작도 끝도 없다고 증거 한다.
어떻게 창조 되신 신이라고 하겠으며 성부하나님의 혈육의 아들 으로써만 간단히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견해들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분명 존재의 시작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분명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에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어떻게 낳으셨는지 설명하려 들지 않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시작과 끝이 없고’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이신지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다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성경은 분명히 예수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있으며 여호와 하나님이란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있는 자’란 말씀 자체를 우리 인간들이 해석하고 설명 할 수 없다면
예수그리스도의 본성에 대하여도 설명하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누구도 ‘스스로 존재’한다는 말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 3:13-14)

다음의 성경 절을 대조하여보면 예수님은 분명 여호와하나님이심이 확실하다.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11)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 3) 요1:14.참조하라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여호와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요한은 예수님이시라고 고 증거하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여호와로 칭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출 3:13, 14)

예수님이 구약에서는 여호와로 인간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은 스스로계시는 여호와이신데 어떻게 시작이 있겠는가?
다음의 말씀들을 계속하여 대조하여 보라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

(시 7:8; 말 3:1-5 = 요 5:22) 여호와가 심판주이심 = 모든 심판은 예수님이 하심.

(시 23:1 = 요 10:11) 여호와 선한목자 = 예수님이 선한목자이심.

(사 44:6 = 계 11:8, 17; 22:13) 여호와가 처음과 나중 = 예수님이 처음과 나중.

(사 40:10 = 계 22:12) 여호와께서 상급을 주심 = 예수님이 상급을 주심

(사 43:11 = 행 4:12) 여호와가 구원자이심 = 천하인간에게 오직 예수이름만이 구원을 줌

(사 40:3 = 마 3:3) 외치는 자의 소리가 여호와의 길을 예비함 = 외치는자 침례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함

성경 가운데는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하나님과 차별되는 많은 말씀들이 있다.
그러므로 의문점이 있는 말씀을 찾으려면 많은 것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오묘에 속한 말씀들을 좁은 인간의 식견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는 실수를 하고 있다.

누구나 성경을 읽노라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동등에 대하여 의문을 안 가져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더 나아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유한한 인간의 두뇌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지식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에 설명되어 있지 않은 말씀을 구태여 설명하려고 추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아들이기에 아버지보다는 연하이며 시작이 있다는 설명은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은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영원성과 자존하심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없으신 영원 자존하신 분인 그리스도의 신성의 위상을 함부로 격하시켜 버리는 실수를 했다고 생각해 보라.

이런 경우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그분의 영원성과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 다음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해야 하며 말씀과 말씀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에서 조화를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은 오묘로 남겨 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겸손일 것이다. 영원한 우리의 본향에서 연구할 주제로 남겨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신성을 모두 알기 위해서는 그분과 대등한 지혜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분이 항상 우리에게 오묘하신 분으로 계심이 그분을 더욱 존경할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5)

사단의 제안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하나님과 같이”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같지 않고서야 어떻게 피조물이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영원한 세계를 살아가면서 지혜와 지식이 증가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면 이렇게 항변할는지 모른다. '성경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이라고 하셨지 않는가? 그런데 예수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아들이 될 수 있는가?' 라고 흑백 논리를 제시할는지 모른다.

기억해주기 바란다. 결코 예수님이 스스로 계신 분이기에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들이면서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것을 입증하라고 한다면 성경에 나타내지 않은 것을 억지로 설명을 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영원함과 시작과 끝이 없으신 신성의 신비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신 29:29, 30)